재즈시대의 메아리

<금이 가다 1936년 2월>
인생은 10년 전만 해도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는 느낌과 그럼에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필요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야 했다.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겠다는 집념, 이미 확장된 과거와 미래라는 목표, 그 사이의 균형점 말이다. (…)그런데 아직 마흔아홉까지 10년이나 남은 이때, 내게 이미 금이 가 버렸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1.사유를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 2. 좋은 인생의 기준도 다른 이에게서 빌려 왔다는 것. 3. 나의 예술적 기준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세번째 사람에게서 가져왔다는 것 4.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 네 번째 사람의 기준을 따왔다는 것(…)그러므로 더이상 '나'는 없다. 나라는 바탕 자체가 없기에 그 위에 자기 존중을 쌓아 올릴 수도 없는 것이다. (…) 나는 또한 실제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소위 '끝없는 분투'는 언젠가 다가올 젊음과 희망의 종말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성공 1937년 10월>
때 이른 성공을 맛본 사람은 거의 맹목적으로 운명의 힘을 믿게 되는데, 이는 의지력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그 최악의 형태가 나폴레옹식의 망상이다 일찍 꽃핀 젊은이는 하늘이 나를 빛낼 운명을 내렸기 떄문에 자신이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서른이 되어서야 올라선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 운명에 대해 균형된 생각을 가지게 되고, 마흔이 되어서야 그곳에 이른 자는 개인의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후일 풍랑을 만나게 되면 드러난다.

이른 성공의 보상은, 삶이 로맨틱하다는 확신이다. 사랑과 돈이라는 우선적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고 유명세가 당연시되자, 나는 꽤 오랜 기간을 영원한 해변의 축제를 찾으며 낭비하게 되었다.
(…)
지금도 가끔 뉴욕의 어느 가을 아침, 혹은 너무나 조용해서 이웃 마을의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캐롤라니아의 어느 봄날 밤, 나는 살금살금 그 청년에게 다가가곤 한다. 하지만 나와 그 청년이 다시 하나가 되는 일은, 충족된 미래와 동경의 과거가 하나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합쳐지는 일은 더이 상 일어나지 않는다. 그 찰나의 순간, 삶은 그야말로 하나의 꿈이었다.

<묵으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비엔나 최고의 호텔은 브리스톨이었고, 그곳 역시 비어있다는 이유로 우리를 반겼다. 창밖으로는 비통해하는 느릅나무 너머 고리타분한 바로크식 오페라 하우스가 보였다. 자허 부인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오크 판넬 위에는 프란츠 요세프가 오래전 마차를 타고 어딘가 행복한 곳으로 떠나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도시는 이미 가난했고, 아니 멈추어있었고, 주변의 얼굴은 다들 지치고 방어적이었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오류의 왕관, 판도라의 상자였다. 자부심 가득한 뉴요커의 한 사람으로 올라갔던 나는 그곳에서 뉴욕의 빌딩숲은 끝없는 연속이 아니라 유한하다는 사실을, 도시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녹색과 청색의 무한한 자연으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난생 처음 그토록 높은 곳에 올라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뉴욕은 결국 하나의 도시일 뿐이지 우주가 아니었다는 쓰린 자각과 함께 상상 속에 쌓아 올린 빛나는 건축물은 그렇게 땅으로 무너져내렸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나의 잃어버린 도시에 작별을 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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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딴짓하기, 원성준

이 책은 주인의식에 관한 책입니다. 제목의 ‘딴짓'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번역어일텐데, 딴짓과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감이 아주 다르죠. 사이드 프로젝트가 좀더 주제에 부합할 것 같은데, 이는 사내에서 내가 맡은 주력 프로젝트가 아닌 해커톤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대로 정규직 이외에 따로 하는 개인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초창기 스타트업 준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이...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