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eun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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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딴짓하기, 원성준

이 책은 주인의식에 관한 책입니다. 제목의 ‘딴짓'은 '사이드 프로젝트'의 번역어일텐데, 딴짓과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감이 아주 다르죠. 사이드 프로젝트가 좀더 주제에 부합할 것 같은데, 이는 사내에서 내가 맡은 주력 프로젝트가 아닌 해커톤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대로 정규직 이외에 따로 하는 개인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초창기 스타트업 준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남이 시켜서, 해야 해서, 먹고 살아야하니까 하는게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주도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저는 이 책이 주인의식 혹은 초심에 관한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경력 시작하며 재미도 목표도 있었는데 번아웃도 겪고 실제 대부분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결국 그다음 채용을 위한 밑거름이나 누군가의 사업 준비에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지라 언젠가부터 이 열정맨 흐름(?)에 굉장히 지쳤던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었고, 어떤 일에 열정을 느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작년쯤부터 이제는 정말 먹고사니즘을 넘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이것만이 주 40시간 이상을 잡아먹는 '일'이라는 길고 지치는 과업에게서 내 인생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니면 빠른 은퇴뿐 …!) 그래서 이 책으로부터 다음 단계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그리고 평소 회사에서도 어떻게 좀더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을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실제로 실무에서 겪은 얘기를 자세히 풀어놓아 흥미로웠고, 챕터별로 조언을 다시 갈무리해주고 있어서 읽기도 편했습니다. 아마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도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저자의 모국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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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시대의 메아리

<금이 가다 1936년 2월>
인생은 10년 전만 해도 내가 하기 나름이었다. 노력을 해도 소용없다는 느낌과 그럼에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필요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나가야 했다.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성공'하겠다는 집념, 이미 확장된 과거와 미래라는 목표, 그 사이의 균형점 말이다. (…)그런데 아직 마흔아홉까지 10년이나 남은 이때, 내게 이미 금이 가 버렸음을 갑자기 깨달았다. 1.사유를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 2. 좋은 인생의 기준도 다른 이에게서 빌려 왔다는 것. 3. 나의 예술적 기준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세번째 사람에게서 가져왔다는 것 4.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에 대해 네 번째 사람의 기준을 따왔다는 것(…)그러므로 더이상 '나'는 없다. 나라는 바탕 자체가 없기에 그 위에 자기 존중을 쌓아 올릴 수도 없는 것이다. (…) 나는 또한 실제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 소위 '끝없는 분투'는 언젠가 다가올 젊음과 희망의 종말을 더 불행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른 성공 1937년 10월>
때 이른 성공을 맛본 사람은 거의 맹목적으로 운명의 힘을 믿게 되는데, 이는 의지력과는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그 최악의 형태가 나폴레옹식의 망상이다 일찍 꽃핀 젊은이는 하늘이 나를 빛낼 운명을 내렸기 떄문에 자신이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서른이 되어서야 올라선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 운명에 대해 균형된 생각을 가지게 되고, 마흔이 되어서야 그곳에 이른 자는 개인의 의지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각각의 태도가 만들어내는 차이는 후일 풍랑을 만나게 되면 드러난다.

이른 성공의 보상은, 삶이 로맨틱하다는 확신이다. 사랑과 돈이라는 우선적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고 유명세가 당연시되자, 나는 꽤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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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ing Fast and Slow

아래 인용구는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의 일부 문장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시간은 궁극적으로 유한한 자원이지만 기억 자아는 그런 현실을 무시한다. 장기간 행복보다 단기간의 강렬한 기쁨을 선호하며, 장기간의 견딜만한 고통보다 짧지만 강렬한 고통을 더 두려워하게 만든다. 끝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면 아무리 장기간의 행복이라도 기꺼이 포기하려 한다.
(…)
지속 시간에 무게를 둔 행복 개념은 기억 가능 여부와 상관 없이 인생의 모든 순간을 똑같이 취급한다.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순간을 곱씹으면서 보내는 시간은 이런 지속 시간에 포함되면서 그 무게감을 높인다. 바이올린을 연습하면서 보낸 시간은 후에 몇년동안 연주하거나 청취하는 많은 경험을 늘려줄 수 있다.

지속 시간에 무게를 두면 우리는 기억할 수 있거나 의미 있다는 사실에 따라서만 결정이 가능해진다.

그러면 궁금해진다. 사소한 순간을 더 지속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럴 수 있는 수단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
클래식이 가진 규칙과 패턴?
종교적인 무언가?
모더니즘이 존재하지 않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스스로 무너트린 한국에선 무엇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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